서예이론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8

심연 윤혜진 2013. 9. 24. 23:06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8

 

  송 종 관 (철학박사 · 무심서학회 회장)


  3. 조형과 포백의 철학


 2) 결구


  결구(結構)는 점 · 획을 서로 엮어서 하나의 글씨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집을 지을 때 나무를 서로 엮어서 집을 짓는 것과 같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집을 짓는 것과 같이 일정하게 엮어서 만든 글씨는 글자로서 만의 조건은 만족할 수 있지만 글씨로서의 가치는 생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글씨에는 예술적으로 만족해야 하는 충족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어떻게 점과 획을 엮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글씨가 만들어진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나라 채옹(蔡邕, 133-192)은 “글씨는 자연에서 비롯하였으므로 자연이 확립되면 음 · 양이 생기고, 음 · 양이 이미 생기었으면 형세가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1) 이 말은 곧 이렇게 나온 형세가 글씨가 되는 것이므로 글씨는 모름지기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객관적 현실의 각종 사물의 형체를 방영하여 결구의 아름다음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점 한 획, 나아가 하나하나의 글씨마다 일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연상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해 왕희지는 확실하게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글씨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먹을 잘 갈아놓고, 정신을 모아 생각을 조용히 한 다음, 글자 형태의 대소(大小) · 언앙(偃仰) · 평직(平直) · 진동(振動)을 예상하고, 근맥으로 하여금 서로 연결되게 하며, 뜻이 붓보다 앞에 있은 연후에 글씨를 쓰는 것이다. 만약 평직이 서로 같고, 모양이 산자(算子)와 같이 상하방정하고 전후가 가지런히 평평하다면 글씨라고 할 수 없고, 다만 점획만 얻을 뿐이다.”라고 하였다.2) 이는 글씨라고 할 수 있으려면 이러한 조건에 부합해야지 그렇지 않고는 글씨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해결하기위한 결구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몇 가지 정리해 보기로 하자.

  첫째는 평형과 대칭이다.

  현재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을 살펴보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이 평형과 대칭이 되지 않은 것이 없다. 가까이 있는 우리의 집 및 자동차 그리고 일용품에서 정원에 서있는 나무에 이르기까지 평형과 대칭형식을 취하지 않은 사물이 없다. 나아가 우리 인체를 살펴보자. 특히 우리 몸이 좌우로 평형과 대칭이 되지 않았다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예상해 보자. 평형과 대칭은 평정과 안온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평정과 안온의 세는 해서나 예서에서 많이 요구한다. 그렇지만 글씨가 평정과 안온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초서는 이 평정과 안온의 세도 있지만 험위(險危)한 세가 많다. 그렇지만 지나친 험이나 지나친 위는 평형을 잃기 쉽기 때문에 “험하지만 무너지지 않아야 하고 위하지만 평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둘째는 다양(多樣)과 통일(統一)이다.

  평형과 대칭이 글씨 결구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평형과 대칭은 다양과 통일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평형과 대칭은 다양과 통일 가운데 얻어진 평형과 대칭이어야 하므로 다양과 통일을 떠나서 평형과 대칭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 주위의 모든 사물의 결구가 다양과 통일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만약 다양성은 있으나 통일성이 없다면 사람들에게 혼란한 인상을 주어 아름다운 느낌을 주지 못할 것이고, 통일성은 있으나 다양성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기계적 인상을 주어 또한 아름다운 느낌을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주위의 모든 사물을 관찰해 본다하더라도 다양과 통일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 없으므로 다양과 통일은 정확한 도리라고 할 수 있다. 미학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 다양과 통일은 하나의 미학법칙이다. 이 다양과 통일의 법칙은 글씨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음악에 있어서도 필수조건이다. 만약 음악의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소리의 연속이라면 어떠한 소리로 들릴 것인가는 생각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소리의 높고 낮음 · 길고 짧음 · 넓고 좁음 등의 다양한 소리가 어떠한 규율이 없이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면 아름다운 음악의 곡조가 이루어 질수 있을까? 이러한 다양한 소리만으로는 음악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소리가 어떠한 규율에 맞추어 통일되어야 화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화음이 이루어져야 음악의 가치가 생성되는 것이다. 글씨에서 평정(平正)과 험절(險絶)의 관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글씨에 평정만 있고 험절이 없다면 기계적이어서 평담(平淡)하여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험절만 있고 평정이 없다면 평형과 대칭이 무너져 고의로 비뚤비뚤하게 조작한 인상을 주어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글씨에 험절과 평형의 통일이 요구되는 것이다.

  셋째로 대비(對比)와 조응(照應)이 되어야 한다.

  대비와 조응은 객관적 사물이 서로 배척(排斥)하거나 의존(依存) 또는 연계(聯系)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조형예술의 형상법칙이면서 모든 문학예술부문에 운용되기도 한다. 더구나 글씨의 결구에서는 이 대비와 조응이 잠시라도 떠날 수 없다. 서예가는 모두 글씨를 쓸 때마다 결구에서 스스로 느끼든 못 느끼든지 간에 운용하는 법칙이다. 다만 이 법칙을 운용함에 있어서 글자의 결구에서는 위에서 제기 했던 다양과 통일을 요구하게 된다. 모든 글씨에 결구의 다양성은 그 글씨 각 부분의 점획의 차이성이 있기에 표현된다. 이런 차이성은 가장 명확하게 표현으로 대비된다. 대비가 없으면 결구의 선명한 다양성의 변화가 없다. 동시에 모든 글씨 결구의 통일성은 그 글씨 각 부분의 점획이 서로 의존 · 연계함에서 표현되며, 점 · 선 · 형의 대치(大致)와 상근(相近)의 중복출현으로 표현되며, 글씨 각 부분의 점 · 획이 서로 조응하느냐 혹은 호응하느냐로 표현된다. 이것은 조응이 없으면 결구의 통일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3)

  위와 같이 결구에는 평형과 대칭의 통일, 다양성의 통일, 대비와 조응의 통일이 요구된다. 이러한 조건들이 성립된다면 더욱 글씨의 아름다음을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