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 김충현 기획전 2015년 1월 15일부터 -서예가 건축을 만나다.-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1921∼2006). 동생인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1927∼20
07)과 함께 20세기 한국 서예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일제가 우리 말글을 없애려
고 혈안이 됐던 1942년, 그가 22세의 나이로 교본 ‘우리 글씨 쓰는 법’을 썼다는 것은 우리
서예계의 전설이다. 옛 궁중에서 쓰던 궁체를 현대화시킨 필법을 독창적으로 구사했고, 한
자 예서체 느낌의 한글 훈민정음 판본체를 최초로 창안해 초·중등 교과서의 모범체로 선정
되기도 했다.
그는 서예 오체인 전·예·해·행·초(篆·隸·楷·行·草)에 모두 능하면서도 무엇보다 한글 서예의
미학을 독창적으로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았다. 서예가 비록 한자문화권에서 나온 것이라 하
더라도 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중은 현판과 비문 글씨의 대가로도 알려져 있다. 경복궁 건춘문(建春門)과 충남 천안 독립
기념관 현판, 이승만·박정희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의 비문, 충남 온양역 앞 충무공 기념
비, 삼성그룹 로고 ‘三星’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일중이 남긴 현판 글씨의 진면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획전이 오는 15일부터 25일까지 서
울 종로구 관훈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린다. ‘김충현 현판글씨 - 서예가 건축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일중의 현판 글씨 160여 점을 선보인
다.
김재년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난 2년간 서울을 비롯해 경기, 경북, 대구, 광주,
제주 등지에 산재해 있는 현판들을 찾아서 사진 작가들이 사진을 찍고, 전문가들이 그 의미
를 분석해 이번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일중의 아들인 김 이사장은 “현판은 서예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작업인데, 현판이 걸린 건물이 사라지면 없어질 수도 있는 까닭에 이번
작업을 서둘렀다”며 “작품 보존을 위해 470여 쪽에 달하는 도록(왼쪽 사진)을 마련한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부로 나뉜다. 제1부는 예술인, 지인, 제자, 가족 등 개인에게 써 준 현판이다. 이는
폭넓은 그의 교유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은 “일중은 당대의 학자, 화가들과의 교유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
어갔다”며 “특히 한글학자인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서화가 영운(嶺雲) 김용진(金容鎭),
산수화가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등과의 교유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복궁 건춘문.
천안 독립기념관 현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 한강대교, 전북 부안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 경기도 여주 영릉(세종대왕릉) 훈민문,
서울 종로사직단, 경복궁 영추문 현판. 일중 김충현 작품이다.
제2부는 공식 요청으로 쓴 현판으로, 이는 일중의 위상을 드러낸다. 이 작품들은 다시 궁궐
및 사직단 현판, 사찰 현판, 유적지 및 공공건축물 현판으로 세분된다. 사적 인연인가 공적
요청인가에 따라 서풍이 확연히 다르다. 전자는 비교적 자유스럽고 편안한 반면, 후자는 정
연하고 근엄한 것이 특징이다
기획자인 정 실장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번 전시를 즐기는 한편, 도록의 의미를 제대로 살피
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일중은 국한문의 모든 서체에 두루 능숙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역시 예서다.
그의 현판 예서에서는 한나라 예서의 서풍을 골고루 섭렵한 후 만든 ‘일중풍’ 예서가 단연
돋보인다. ‘일중풍’ 예서는 원필에 파책이 강하지 않고 부드럽고 길게 늘어진다. 때로는 옆
의 글자와 부딪힐 듯 피해간다. 하단에 여백이 많아 소랑(疎朗)하고, 획간(劃間)의 밀(密)함
으로 웅강하다. 화려하면서 세련되고, 유려하면서 힘차고, 정연하면서 변화가 많아 노련미
와 원숙미를 갖춘 것이 일중 예서의 특징이다.”
전시는 다음 달 25일까지. 02-734-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