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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이론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5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5

 

  송 종 관 (철학박사, 한림대학교 외래교수, 무심서학회 회장)


  

   2. 획의 철학


   2) ‘一’의 예술성

  작은 한 일자의 선(一)은 아름다운 예술성이 있다. 누가 그 선의 아름다운 예술성을 드러내는가?

  종요(鍾繇, 151-230)는 “필적은 경계선이고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이다.”라고 하였다.1) 이를 구체적으로 종백화(宗白華, 1897-1986)는 “붓에 먹을 찍어 종이 위를 지나가면 붓이 필적을 남기면서 공백을 돌파하며 형상을 창조한다. 이런 필적은 만상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곧 그런 필적을 남긴 그 사람 마음속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없으면 이런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없으며, 사람이 없으면 이런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없다. 그러므로 종요는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자는 사람이다.”라고 설명하였다.2)

  그렇다면 필적은 어떠한 아름다움이 있는가? 이는 곧 점과 선의 아름다움, 형식의 아름다움, 그리고 생기 있는 박자의 아름다움이다.

  먼저 선의 아름다움은 어떠한 것인가? 선의 아름다움은 선의 질에 있다. 선의 질은 뼈와 살의 관계와 선의 피부에서 나타난다. 뼈는 붓의 끝에서 만들어 진다. 붓 끝이 선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뼈가 형성된다. 살은 먹물이 만드는 것이다. 붓에 먹을 묻히어 진행하는 과정에서 먹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살이 많고 적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선은 뼈와 살의 비율이 적당해야 된다. 너무 먹물이 작거나 마르면 비속하게 거칠어 보이고 넘치면 먹 돼지가 된다.

  형식의 아름다움 역시 선의 질에 있다. 이는 붓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타난다. 즉 선이 굽었느냐 곧으냐(曲直), 가벼우냐 무거우냐(輕重), 일으켰느냐 엎드렸느냐(起伏), 그리고 붓을 종이에 대는 시작에서 모나게 하느냐 둥글게(方圓) 하느냐로 설명할 수 있다. 왕희지(303-361 또는 321-379)는 이를 수치화 하여 정확성을 더하였다. 그는 “언제나 글씨는 10획은 천천히 5획은 급하게, 10획은 곡선 5획은 직선, 10획은 장봉 5획은 노봉, 10획은 똑바로 세우고 5획은 엎드리듯 하고자 하여야 글씨라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였다.3) 이는 곧 선의 상태가 천천히 긋는 획과 급하게 그은 획과의 비율, 곡선과 직선의 비율, 원필과 방필과의 비율 그리고 바로선 획과 비스듬하게 기운 획의 비율을 수치화 한 것이다. 이러한 수치로 보아 천천히, 곡선으로, 원필 그리고 바르게 선 획의 비율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자의 아름다움은 선의 율동감에서 나타난다. 이 율동감은 곧 음악의 박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선은 음악의 박자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음악성은 선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선의 음악성은 곡선으로 나타난다. 위부인(272-349)은 “‘一’은 하늘에 구름이 진을 치기를 1000리에 걸쳐있는 것 같아서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형태가 있는 것이다. ‘⼁’은 만년 묵은 마른 등나무 형상과 같다.”라고 하였다.4) 하늘에 구름이 1000리에 걸쳐 있는 것을 연상해보자. 이 선은 우뚝이 보이는 직선이 것이 아니고 분명히 은은히 보일 듯 말듯 한 곡선이 연상될 것이다. 이러한 곡선은 오선지위에 나열된 음 자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만년 묵은 마른 등나무를 보자. 한 쪽 방향으로 뒤틀리면서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갔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가로획이든 세로획이든 획이 짧든 길든 간에 모두 박자감이 있다. 이것은 음악성으로 생각해 볼 때 음색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그 음악에 따른 무용수의 몸동작 하나하나를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박자의 아름다움은 붓의 사용에서 나타나는 행(行)과 유(留)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붓이 가는 듯 하지만 그 속에 멈춤이 있고 반대로 붓이 멈춘 듯 하지만 그 속에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 붓의 움직임이 빠르냐 느리냐(疾澁), 무거우냐 가벼우냐(輕重), 천천히 하느냐 급하게 하는냐(緩急), 당기느냐 끄느냐(挽引), 끄느냐 얽느냐(牽繞)에 따라 그 필의는 다양한 느낌을 준다. 이 역시 음악에서 박자의 길이와 음의 크기 또는 음질이 음악성을 대표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

  박자의 아름다움은 일파삼절(一波三折)에서도 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 일파삼절은 종요의 제자 송익(宋翼)이 글씨 쓸 때마다 일파삼절을 했다고 한다.5) 송익이 일파삼절을 하게 된 동기는 스승의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송익이 글씨 쓸 때마다 평직상사(平直相似)하였기 때문에 종요가 이를 비평한 다음 그는 글씨 쓸 때마다 일파삼절을 했다는 고사가 있다.6)  일파삼절은 바다의 파도 형상이다. 하나의 파도는 세 단계의 오르고 내림의 동작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글씨에서도 하나의 작은 한 일자의 선(一) 속에 일파삼절의 동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희지 역시 일파삼절을 중시하였다. 그는 “만약 평직이 서로 같아서 형태가 산자를 늘어놓은 것 같고, 상하가 방정하고, 전후가 모두 평평하면 곧 글씨가 아니라 단지 점획만 얻었을 뿐이다.”7)라고 하였다. 이 말은 서예에서 선이 상하가 방정하고 전후가 모두 평평하게 나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하나의 작은 선을 이러한 우주만물의 형상에 비유하여 예술성을 설명하는 이유는 곧 선의 형태에 자연성은 물론이고 생동하는 기운의 작용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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