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3
송 종 관 (철학박사, 한림대학교 외래교수, 무심서학회 회장)
1. 점의 철학
2) 무극
서예에서의 가장기초가 되는 ‘점’을 『주역』에서는 ‘태극’에서부터 우주의 원리를 설명한다. 이 태극을 주렴계(周濂溪)1) 선생은 만물의 생성과 구조라고 말하면서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다.”라고 하였다. 주렴계 선생은 왜 “무극이 태극”이라는 명제를 제시했을까? 그는 원래 도학자이었다. 도학자인 그는 도사인 진단(陳摶)의 『태극도』에 근거하여 『태극도설』에서 “무극이 태극이다.”라는 학설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이 명제에 대해 주희(朱熹)는 무극이란 말은 시간과 공간속에 있지 않으며(無方所), 형체가 없다는 뜻으로 ‘태극’의 형용사라고 본 데 비해, 육구연(陸九淵)은 태극 앞에 무극이라는 실체를 두는 것은 “집 위의 집이며, 상(床)아래 상이다”라고 하여 쓸데없는 것으로 배척하기도 하였다.2)
무극의 무(無)는 유(有)의 반대어이다. 즉 유(있음)는 사물의 존재를 가리키며, 형체가 있음, 이름이 있음, 실제로 있음 등의 뜻을 가진다. 이와 반대로 무(없음)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키며, 형체가 없음, 이름이 없음, 비어서 없음(虛無) 등의 뜻을 갖는다. 무에 대한 해답은 『노자』가 가장 잘 설명하였다. 그는 “천하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며,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3)라는 관점을 제시하여 무가 유를 생산해 내는 정신적인 근원이라고 보았다. 삼국시대 위(魏)의 왕필(王弼)은 노자의 이 관점을 이어받아 「귀무론(貴無論)」을 제시하여 “천하의 사물은 모두 유에서 생겨나고 유가 시작되는 것은 무로서 그 근본을 삼는다.”4)라고 하였다.
이 무라는 점은 도가철학에서는 도(道)라고 부른다. 이 도는 노자철학의 중심범주며 최고범주가 된다. 이 도에는 기(氣)가 있으며 상(象)이 있다. 도는 원시적으로 혼돈 그 자체이지만 이 혼돈은 음양의 기에 의해 움직이며 이 움직임은 곧 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주역』의 태극을 설명할 때도 태극은 고요히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음양의 기가 움직여 만물을 생산한다고 설명하였다. 도가에서의 무극 역시 원시 혼돈이지만 고요히 혼돈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이 서법예술철학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서예의 가장 기초가 되는 점 역시 검은 먹 점일 뿐이지만 그 속에서 음양의 작용에 의해 생긴 기로서 생명력을 나타낸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서예의 점 역시 도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하나의 점에 불과한 도는 스스로 자기운동(自己運動)을 한다. 도의 작용에서 이미 설명이 있었지만 도는 정지된 것도 아니고, 움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영항(永恒)한 ‘서(逝)’, ‘원(遠)’, ‘반(反)’이란 운동 중에 처해 있으며, 영항한 독립운동 즉 자기운동 중에 처해 있다.5) 바로 이 같은 도의 운동이 우주만물의 생명을 구성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서예의 검은 점 역시 자기운동을 하므로 생동감을 거론하는 것이다. 이 도는 ‘기’와 ‘상’과도 긴밀하게 연계된 범주다. 노자는 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의 물건 됨이여, 오직 황홀할 뿐이다. 황홀하구나, 그 중에는 ‘상’이 있다. 황홀하구나, 그 중에는 ‘물(物)’이 있다. 요명(窈冥)하구나, 그 중에는 ‘정(精)’이 있고, 그 정은 심히 ‘진(眞)’하며, 그 중에는 ‘신(信)’이 있다.6)
이 말은 도는 황홀하고 요명하지만 오히려 절대적 허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도는 상 · 물 · 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도는 진실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이라는 것은 ‘기’를 말하는 것이다.7) 노자의 이 말은 도는 기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도는 혼돈의 기를 만들고, 혼돈의 기는 음과 양 두 기로 분화하며, 음과 양 두 기는 상호 교류를 통하여 일종의 화합된 상태를 형성하고, 만물은 이 음과 양 두 기가 상호 교통과 화합을 통해 생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의 본체와 생명은 기며 또한 도가 되는 것이다. 만물은 모두 음과 양이란 두 종류의 대립적인 면과, 화합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보아도 알 수 없는 기 가운데 통일을 이루고 있다.8)
만물의 본체와 생명이 도와 기라면, 그 상도 도와 기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만약 도와 기를 떠난다면 그 상은 본체와 생명을 잃게 되며, 조금도 의의와 가치가 없는 물건이 되고 만다.
이와 같이 서예에서의 먹으로 형성된 ‘상’인 점은 우주만물의 본체성과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나아가 하나의 획으로 발전할 것이며, 점과 획은 서로 교류와 화합을 통해 한 글자(字)를 형성할 것이다. 한 글자는 문(文)과 화합하여 하나의 작품의 소재가 되며 이를 붓으로 종이에 옮기면 서품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서품은 만물의 본체와 생명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러한 점의 의의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한 점 한 획을 소홀히 먹만 칠해 놓고도 서품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서예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6 (0) | 2013.07.23 |
---|---|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5 (0) | 2013.06.05 |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4 (0) | 2013.06.05 |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2 (0) | 2013.04.26 |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1 (0) | 2013.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