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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이론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2

철학으로 사유하는 서예 2

 

  송 종 관 (철학박사, 한림대학교 외래교수, 무심서학회 회장)


  

  1. 점의 철학


  서예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점과 선이다. 선은 또한 점의 연장이므로 어느 것이 서예 원리의 근원이냐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점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이 점은 무엇인가를 사유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점은 곧 『주역』의 ‘태극(太極)’이다. 『주역』은 이 태극을 시작으로 음과 양 즉 양의(兩儀)로 나뉜다. 이때의 양은 다시 노양(老陽) 소음(少陰)으로 나뉘고, 음은 소양(少陽) 노음(老陰)으로 나뉜다. 이 사상(四象)은 다시 8괘(八卦)로 8괘는 또 64괘로 나뉘어 온 우주 만물의 대표 기호로 발전하였다. 더 원초적 본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태극은 역시 하나의 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점의 원리를 설명하는 ‘태극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태극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이 ‘태극도(太極圖)’이다. 이 태극도는 주자(朱子)의 말에 의하면 렴계(濂溪)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렴계선생은 성이 주(周)씨이고 이름이 돈실(惇實)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라 하였다. 그러나 후에 영조의 옛 이름이 돈실 임을 알고 이를  피하여 돈이(惇頤)이라고 고치어 현재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주돈이’이다. 그는 렴계라는 동내에 살며 박학역행(博學力行)하여 일찍이 도를 깊이 통했다. 그는 일을 만나면 강하고 유하여 고풍이 있고 정사에는 정밀하고 엄하였다. 그는 또한 정밀하고 엄함 속에 용서까지 겸하여 그 도리를 다하여 펴는 데 힘썼다. 그는 일찍이 태극도와 통서(通書) 및 역통(易通)의 수십 편을 지어 흉금이 쇄락하고 맑고 높은 취미가 있어서 더욱 산수를 즐기었다. 여산 모퉁이에 렴계라는 시내가 있어 선생이 창랑가(滄浪歌)를 부르며 즐기었으니 이로부터 렴계라는 호를 부치고 서당을 그 위에 지었다고 한다.

  태극인 ◯은 이른바 무극(無極)이다. ◯은 움직이면 양이 되고 고요하면 음이 되는 까닭의 본체이다. 그러나 태극은 음과 양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음양이지만 그 본체는 음양이 섞이지 아니함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 본체(本體)가 되는 것이고, ◯이 움직이면 양이 되니 ◯에 용(用)이 작용함이며, 고요하면 음이 되는 것이 ◯의 체가 확립됨이다. 이렇게 태극은 양변음합(陽變陰合)하여 오행(五行, 水 · 火 · 木 · 金 · 土)이 생기었다.

  오직 사람만이 이 체와 용의 우수함을 얻어서 가장 신령함으로 사람이 곧 태극이라는 이론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형태가 됨은 음의 고요함이요, 정신이 됨은 양의 움직임이다. 게다가 오성(五性) 즉 오행은 남 · 녀 및 선과 악의 분별 또는 만물의 형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천하의 움직임이 얽히고설키어 길함과 흉함 그리고 뉘우침(悔)과 욕심(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인은 그 우수함에 정일(精一)함을 얻어 ◯의 체와 용을 완전히 하므로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함(一動一靜)에 그 극(極)을 이르게 하며 천하의 연고(然故)가 항상 부동(不動)하는 가운데서 감통(感通)하게 되는 것이다.1)

  이 태극이 서예의 가장 기초가 되는 점의 근본이 된다. 그러므로 한 점 속에는 그냥 먹칠을 하여 만들어진 점이 아니라 태극의 원리가 내포되어 작가의 마음이 하나의 점으로 표현 된다는 사실을 관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점이 그냥 가만히 있는 점이 아니라 가만히 있기도 하지만 가만히 있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으므로 곧 이점은 죽은 점이 아니고 살아 숨 쉬는 점이 된다. 그렇다면 생명이 있는 점은 생명이 있는 서예로 발전하는 가장 기초적 생명의 씨앗인 셈이다. 이 하나의 점이 생동감이 없으면 점의 연장인 획 또한 생명력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점과 선이 생명력이 없으면 이 점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글씨 또한 생명력이 없을 것이다. 나아가 한 글씨가 생명력이 없다면 어떻게 완성된 작품에서 생명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서예에서는 왜 생명력을 요구하며 그 원천은 무엇이며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이 문제점의 해결이 곧 점의 철학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주역』의 원리에서 한 점의 내면에 철학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점의 철학의 원천이 곧 주역의 태극원리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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